HCD project : 대학생에게 더 나은..
디자인학회 DEMA에서는 방학 때 마다 IDEO의 HCD tool-kit을 기반으로 HCD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공감과 협업이라는 키워드가 강조되는 HCD tool-kit이 DEMA와 잘 맞기 때문이다. 저번 방학 때까지만 해도 HCD 프로젝트는 한 개인을 타겟으로하여 그 사람의 다양한 니즈를 분석하고 그 사람을 위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HCD프로젝트에서는 한 사람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대학생에게 더 나은…’이라는 폭 넓은 주제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번 HCD 프로젝트는 주제를 선정하는 1주, H단계 2주, C단계 2주, D단계 1주로 진행되었다. 그 프로세스에 따라 진행된 '라면먹고 갈래?'조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대학생에게 더 나은..’성’
주제선정: 무겁지도않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좀 더 재미있고, 모두가 그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를 하고 싶었다. 또 예측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주제를 좁게 가져가지 않고 폭 넓게 ‘대학생의 성’에 대해 들어보고 그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해보고자 했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들은 정말 많다. 스펙, 취업, 공부, 군대, 알바, 돈, 등록금, 하숙, 자취 등등. 이 속에는 수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돈이 없으니 돈을 쉽게 벌게한다던가 아니면 효율적으로 돈을 쓰게 해준다던가 하는 너무 뻔한 주제와 챌린지를 정하고 싶지 않았다. 또한 사회구조를 파고드는 본질적인 문제는 실질적으로 우리가 할수 있는 부분들이 적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 가볍지도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으면서, 우리가 끝까지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는 그런 주제를 선정하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대학 앞 모습들은 어느 곳이든 비슷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신촌, 안암, 신림, 건대입구, 숙대입구를 생각해보니 뭔가가 비슷했다. 술집, 싼 식당, 카페, 스터디룸, 당구장, 그리고 모텔도. 엥 모텔?!?!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연인들이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 찾아가게 되는 그 공간, 모텔. 그리고 대학생들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연애. 여기에서부터 우리의 주제는 시작되었다. 가볍지 않으면서 좀 더 재미있고, 모두가 그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 바로 '대학생의 성’이었다.
‘성’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게 바로 문제
디자인 프로세스는 우선 문제를 인식하고, 그 후 문제를 해결해나가기 위한 프로세스이다. 그래서 hcd 프로젝트를 진행 할 때 ‘대학생의 성’이 주제라고하면 ‘이게 왜 문제야?’, ‘성에 대해 불편한 건 당연한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많이 마주했다. 하지만 대학생의 성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가 생각한 문제였다. 즉 대학생의 성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였다.
상대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직장인들의 성과는 달리 대학생의 성은 금기시된다. 잠시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때는 현실과 먼 이야기를 하는 성교육 시간 뿐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성에 대한 실질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음지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성은 부모님께 말못할 부끄러운 것, 대학 동기들의 눈치가 두려워 진짜진짜 친한 친구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 몰래 모텔로 숨어들어가야 하는 것처럼 음지의 부분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성의 영역을 음지에서 양지로 이끌어 내면서, 성에 대한 불편함을 온전히 대학생의 시선으로 새롭게 풀어내고 싶었다.
2주간의 Hear 단계
이 단계에서는 우리는 ‘대학생의 성’과 관련된 경험들, 니즈들을 분석하면서 그 속의 문제점을 정의해 나갔다. hcd tool-kit에서는 challenge를 먼저 정하고 hearing을 진행했다면, 우리는 hearing을 통해서 challenge를 만들어 나갔다.
H단계에서는 설문조사, 인터뷰, 성인용품샵 관찰 등의 방법론들을 사용했다. 하지만 단순히 ‘모텔에서 나올 때 누군가를 마주칠까 두렵다’,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등등 그냥 뻔한 불편한 상황들만 얻었다. 일주일 동안 이렇다할 자료를 모으지 못해 수박 겉 핥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주제가 불편한 사회적인 시선인 것 처럼, 1주일 동안 한두차례 만난 사람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자 기대했던 것 그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6명들 끼리도 아직까지 부끄러워 서로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6명이 각자 타겟이 되어 서로 인터뷰를 하고 각자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오래된 애인이 있다고 말하기 불편하다’ ‘모텔에 들어갈 때’, ‘콘돔을 계산할 때’, ‘속옷 살 때’ 등등. 팀원 6명 모두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다양한 타겟이었고, 밖으로 나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들 내에서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성과 관련된 상황들, 고민들, 두려움 등등 불편함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 하면서 분류를 해가면서 불편함의 이유를 ‘자기애’로 잡을 수 있었다. 상대방의 시선, 사회의 시선, 친구의 시선을 계속해서 인식하고 불편해하지만 말못하고 신경을 계속 쓰는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고, 지켜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올바른 자기애가 아닌 어쩌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싶은 보호본능에 더 비슷한 자기애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더 나은 자기애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인 시선의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대학생의 주체적인 성 문화 만들기’ 를 이번 프로젝트의 챌린지로 잡게 되었다.
2주간의 Create 단계
이 단계에서는 앞선 2주동안 들었던 자료들을 재해석해가면서 어떠한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비집고 해결할 수 있을 지 고민해 보면서 확실한 problem와 대상의 need를 설정하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 아이데이션을 진행하였다.
C단계는 H단계에서 얻었던 자료들을 여러형태로 분류를 해가면서 불편함으로인해 어떤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지에 집중했다. 연인에게,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사회적인 시선에 남, 녀가 했던 행동, 생각들을 불편함의 원인에 따라 재분류해보았다. 그런데 카테고리들은 각자 따로 있는게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우선 정신적으로 독립하는 시기이지만 그와 달리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고 그래서 더 부모님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대학생이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에 있어서 책임감이 중요해지면서 피임이 필수적인 시기이며, 부모님과 함께살고 있거나 하숙을 하고 있어 자신만의 공간이 없어 찾게되는 모텔. 이 모든게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대한민국 대학생의 특수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들의 특수성이 잘 반영된 이런 카테고리 중에서 '가볍지 않으면서 좀 더 재미있고, 모두가 그 중요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주제’를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 초기 생각과 통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와 상황을 다룰 수 있고 솔루션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상상할수 없는 카테고리를 선정하게 되었다. 바로 ‘피임과 관련된 물건’을 통해 ‘대학생들의 주체적인 성 문화 만들기’로 프로젝트의 방향이 좁혀지게 되었다.
뭔가 또다시 H단계가 반복되는 느낌이었지만, 다시 피임에 관련된 경험, 불편함, 상황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공감지도를 만들어, 피임도구를 사용할 때 어떤 이야기들을 듣고, 어떤 생각을하며 어떤 것들을 보는지, 그리고 어떤것들을 말하고, 그 상황 속에서 어떤 불편함을 갖고 있고 어떤 것들을 바라는지 분석해 보았다. 그리고 여러가지 피임들중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어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용하는 콘돔을 중점적으로 분석했다.
콘돔을 살 때 편의점 바닥만 본다던가, 지갑에 보관해둔 콘돔을 꺼낼 때 보게되는 가족사진들, 남자친구가 콘돔을 사오기를 기다리고, 관계를 맺은 후 생리를 할 때까지 남녀 모두 갖는 불안감 등등 피임도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파해쳐보았다. 그리고 그 속의 pain을 도출해보며 해결해야할 문제점들을 정의했다.
problems
- 불안하지만 산부인과에 가지않고 인터넷에만 의존해 확실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게 문제다
- 경구피임약에 대한 좋지않은 인식 때문에 남자에게 피임을 전가하 게 되는게 문제다
- 첫경험시 콘돔을가지고있는게당 연한건데 ‘작정했나?’하는 인식이 문제다
- 여자가 들고다니면 ‘청순하지 않은 여자’,’노는, 쉬운 여자다’ 라는 인식 때문에 여자는 콘돔을 잘 구입하 지 못하고 남자에게 피임을 전가 하게 되는게 문제다
그러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콘돔은 남자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콘돔은 남자가 준비해야하고, 그래서 대부분의 피임이 남자들에게만 전가 되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섹스도 피임도 남녀가 함께하는 것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생각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들의 주체적인 성 문화를 만들기’라는 우리의 챌린지에도 부합하는 마지막 문제를 골랐다. 여자가 들고다니면 안되는 물건인 콘돔을 여자가 들고 다닐 수 있도록, 여자의 물건으로 만들어보기. 그래서 피임에 대한 접근이 더 용이할 수 있도록 하면서, 여성이 콘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섹스도 피임도 함께하는 것이다라는 우리의 메세지를 전달하면서, 동시에 초기 목표였던 ‘성’을 음지의 영역에서 양지로 이끌어 올리고자 했다.
그래서 콘돔의 이미지를 물타기하면서 좀더 여성이 다가가기 쉽게 할 수 있는 방향들을 모색해보았다. 쉽게 접근하기, 콘돔을 트렌디한 아이템으로 만들기, 콘돔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는 PR, 콘돔 자체의 모양 변화, 명화에 콘돔 넣어서 패러디하기 또는 콘돔과 다른 물건과의 연계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데이션을 진행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콘돔과 속옷 세트’. 일상적으로 바라보면 한없이 일상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성과는 뗄 수없는 미묘한 연결고리가 있는 속옷과 그 디자인을 입힌 콘돔을 함께 판매하면 여성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속옷을 고르듯 콘돔도 함께 고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콘돔을 섹스로 접근하는 것보다 더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여성이 콘돔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속옷과 세트’라는 인식으로 물타기, 변명거리 제공까지 함께 갈 수 있었다. 우리가 하고싶었던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재미있는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우리가 원했던 솔루션이었다.
1주간의 Deliver 단계
단순히 제품을 어떻게 유통하고 만들 것인지 이야기 하기보다 그동안 우리가 했던 고민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더 집중해서 고민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생’들이 자주 입는 속옷 브랜드와 함께 콘돔을 판매하는 프로모션을 기획하기로 했다.
WEAR, PLAY, LOVE
Wear 속옷도 입고, 콘돔도 입자. Play 섹스는 즐거워야 한다. Love 나를 사랑하고 파트너도 사랑하자. 이러한 의미를 담은 문구를 통해, 콘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줄이면서, 섹스를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닌 즐거운 것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섹스와 피임은 남녀가 함께하는 것이며 콘돔을 여성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에블린의 속옷 디자인과 맞는 콘돔 패키지를 디자인하고, 콘톰 패키지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메세지 '즐기는 것은 좋지만, 책임을 질 수 있만큼 즐기자'를 담았다. 또한 쇼핑백은 들고가고 밖에서 들고 다니며 빈번하게 재사용을 한다는 것을 이용하여 콘돔에 대한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용도로 이용해 보았다.
HCD project를 마치며...
HCD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H단계가 다른 단계들 보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처럼 주제가 넓은 상황에서의 H단계는 특히나 더 힘들었었다. 우선 좁은 주제로 들어갈 때마다, 이 주제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항들을 못보게 되지는 않을지, 그래서 혹시나 다른 기회를 포착하지 못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이 주제가 우리가 하려던 방향과 맞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었고 그 때마다 의견 합치를 볼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었다. 빠르게 의견합치를 보지 못해 프로젝트 중간 중간 좀 쳐지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구체적인 주제를 선정해 프로젝트의 목표를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다양한 가능성을 넓게 가져갈까’와 ‘프로젝트의 방향을 확실히 함으로써 정해진 기간 내에 팀원들이 지치지 않게할까’의 사이에서 우리를 고민하게 했다.팀원끼리의 소통을 위해 각 단계가 끝날 때마다 회고를 했었지만, 그것으로는 프로젝트의 주제가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오는 ‘과연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하는 고민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주제 선정의 어려움은 정말 어렵다는 것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큰 깨달음이다.
힘든 점도 있었지만, 프로젝트 주제가 주제인만큼 끝까지 재미있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팀원들이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고, 서로의 비밀을 많이 알고 있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또 우리의 프로젝트의 목표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들 스스로가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지않고 당당해질 수 있었다. 스스로 타겟이 되었던 우리가 사회적인 불편함으로 좀더 벗어나 주체적으로 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즐겁기는 배로 더 즐거웠던 그런 HCD project였다.